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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영화

<명량> 영화 정보 - 역사적 배경, 줄거리

by 마미스 주인장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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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미스 주인장 입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충무공 시리즈 3편 중 1편에 해당하는 영화 <명량>을 포스팅 하려고 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한국인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고, 자세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무공이 참전한 대표 전투도 역사 시간을 통해 들어 본적은 있으실 겁니다. 사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은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는 이야기라 특별히 흥미를 느낄 요소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개봉 이래로 지금까지 최다 관객 수 동원의 기록을 유지해 오고 있는 영화 입니다. 관람 관객 수가 무려 총 17,615,844명으로 대한민국 영화 역대 관객 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 보통 천만 관객도 어마한 흥행이라 표현하는데 700만 이상을 더 모으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관객을 끌어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혹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그럼 포스팅 시작 하겠습니다.

 

영화 포스터 - 명량 (2014년 개봉) / 출처 - 구글 이미지

 

영화 명량 역사적 사실과 차이점

영화 명량을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명량대첩이 어떤 전투인지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명량대첩은 선조 재위 시절인 1597년 9월 정유재란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이를 중단하자는 협상을 하던 중에 다시 조선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순신은 부산에 있는 일본군의 본거지를 공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해 조선의 수군 지휘관 자리에서 쫓겨나 사병 신분으로 강등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순신 대신 지휘관을 맡고 있던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패하면서 조선의 수군은 엄청난 피해를 게 됩니다. 이에 조선은 이순신을 다시 총지휘관의 자리에 임명하게 됩니다. 명량은 진도와 육지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다를 일컫는데, 이곳은 물살이 거칠어 울돌목이라고도 불리는 곳 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수군 대비 10배가 넘는 전함과 군사를 앞세워 남해안을 거쳐 서해를 지나 육지로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명량의 좁은 물길과 조류를 이용해 조선 수군이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조선은 서해로의 일본 진출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 수군의 사기 또한 다시금 불타오르게 됩니다. 

 

역사적 사실 차이 1

선조실록에 의하면 배설이라는 인물은 명량대첩 이전에 신병을 치료하겠다고 상부에 허락을 받은 뒤 도망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에 1599년 권율에게 발각되어 한양으로 끌려와 참수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배설이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거북선을 불태우고, 이순신을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고 안위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역사적 사실 차이 2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사용하던 검의 길이는 90~100cm의 쌍룡 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2m 정도 되는 의장용 장검을 사용해 적을 베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또한, 당시 일본군의 주 무기는 유럽에서 들여온 조총을 일본식으로 개량해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조총의 유효사거리는 50~100m 정도고 최대 200m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조총이 화살과 같은 수준의 거리를 날아가 조선군을 공격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역사적 사실 차이 3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 거북선은 명량대첩이 있기 전인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모두 소실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 명량에서는 배설에 의해 거북선이 불타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역사적 사실 차이 4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따르면 칼,창, 총검 등으로 적과 직접 맞서 싸우는 백병전은 안위의 배 위에서 벌어진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난중일기의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적장의 배와 다른 두 척의 적선이 안위의 배에 달라붙어 앞다투어 올라갔다. 안위와 그 배 위의 사람들이 죽을힘을 다해 몽둥이를 들거나, 창을 잡거나, 혹은 수마석으로 무수히 어지럽게 쳐댔다'

반면, 영화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에서 백병전이 치러진 것으로 각색 되었습니다. 

영화 명량 줄거리

임진왜란 6년 차 1597년, 조선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져만 가고 있는 가운데 휴전 협상의 결렬로 일본의 침략은 또다시 시작됩니다. 왜군의 세력은 무서운 속도로 한양을 향하고,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량 전투에서 크게 패하며 남아 있던 사기마저 떨어지고 맙니다. 이때 누명을 쓰고 지휘관 자리에서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됩니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건 12척의 배와 전의를 상실해 두려움에 떠는 병사, 그리고 백성들뿐이었습니다. 선조는 수군을 육군에 합류 시키라 명하지만, 왜군이 남해안을 통과해 서해로 진출해 한양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듣고

이순신은 바다를 포기 하지 않고 왜군과 맞서 싸우기로 합니다. 한편, 왜군은 앞선 한산도대첩에서 크게 패한 와키자카(조진웅)와 함께 일본 해적 출신 구루지마(류승룡)를 앞세워 이순신과의 전투를 준비합니다. 조선 수군은 칠량 전투에서 크게 패하면서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330척의 배를 몰고 전투에 나서는 왜군의 기세에 눌려 탈영하는 병사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오히려 탈영병을 군율로 엄하게 다스리며 전투 준비에 전력을 다 할 것을 지시합니다. 승산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거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조선의 군사 배설은 거북선을 불태우고 도망칩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거북선을 잃고 이순신은 명량의 거친 물살을 보며 생각에 잠기죠. 그러나 부하들의 만류는 계속되었고, 이에 이순신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고 말하고 병사들이 돌아갈 집을 모두 불태우며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집니다. 마침내 결전의 날, 이순신과 병사들이 12척의 배를 몰고 출장에 나섭니다. 멀리서 엄청난 수의 왜적의 함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곧 와키자카의 배가 공격해 오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군의 포탄에 와키자카의 배가 부서져 버리고 맙니다. 조선군의 배가 가까이 다가오지 않자 해적 구루지마의 군대가 먼저 진군해 오고, 울돌목의 거센 물살에 왜적의 배들이 정신 없이 흔들릴 때를 기다리던 이순신은 이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빠르게 승기를 잡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물살의 흐름이 바뀌면서 바다에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합니다. 구루지마의 군대는 물살이 강해지기 전에 전투를 끝내려 더욱 거세게 돌진해 오지만 회오리치는 물살에 갇혀 전군 몰살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소용돌이는 구루지마를 물리친 이순신의 대장선에도 휘몰아쳐 침몰 위험에 빠질 위기에 놓이게 되죠. 하지만 백성들의 도움으로 이순신의 대장선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때마침 이순신의 활약을 지켜본 지원군이 도착해 후방에서 몰려들어 오는 공격에 왜군은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왜군은 자신들의 패배를 인지하며 후퇴하게 되고, 이순신은 조선으로 쳐들어오는 왜군들의 길목을 차단하는데 성공합니다. 전투가 끝난 후, 이순신의 아들 이회가 소용돌이도 전략 중 하나였는지 묻는데 이순신은 이에 자신을 백성이 살린 것이 천행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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